1. 된장의 색, 단순한 숙성의 결과일까?
된장의 색은 숙성 기간이 길어질수록 점점 진해진다. 갓 담근 된장은 연한 황갈색에 가깝지만, 시간이 지나면 짙은 갈색, 심지어 흑갈색으로 변화한다. 이 변화는 많은 사람들이 “묵은 된장일수록 색이 진하다”는 통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이 현상이 단순히 시간의 흐름 때문인지, 혹은 내부에서 일어나는 미생물의 생화학적 반응 때문인지에 대해서는 깊이 있는 고찰이 필요하다. 실제로 된장의 색 변화는 단순한 산화 현상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인 발효 메커니즘이 작용하고 있다.
전통 장독대에서 숙성된 된장은 동일한 시간 동안 숙성되었더라도 날씨, 온도, 습도, 햇빛 노출 정도에 따라 색 변화가 다르게 나타난다. 이는 색깔이 단순한 ‘노화의 지표’가 아니라 내부 미생물 반응과 효소 활성의 결과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고초균, 효모, 유산균 등이 발효 중 생성하는 여러 효소들이 단백질과 탄수화물 성분에 작용하면서 생성되는 갈변 물질이 색의 변화를 이끈다.
2. 갈변 반응의 핵심, 마이야르 반응의 역할
된장 속 색 변화에서 핵심적인 생화학 반응 중 하나는 **마이야르 반응(Maillard Reaction)**이다. 이 반응은 아미노산과 환원당이 고온 또는 장기 발효 환경에서 반응하여 갈색 색소인 멜라노이딘(melanoidin)을 생성하는 과정이다. 마이야르 반응은 음식의 풍미와 색을 변화시키는 대표적인 비효소적 갈변 반응으로, 된장의 숙성과정에서도 이 반응이 활발히 일어난다.
마이야르 반응은 고초균이 분비하는 단백질 분해효소에 의해 유리된 아미노산과, 된장 속 콩의 전분질이 당분으로 전환되면서 반응을 일으킨다. 이때 생성된 멜라노이딘은 짙은 갈색을 띠며, 된장의 색을 진하게 만들 뿐 아니라 항산화 기능도 일부 갖고 있어 발효식품으로서의 기능성을 더해준다. 따라서 된장의 색이 짙어지는 것은 단순히 ‘묵은 맛’의 지표가 아니라, 미생물 효소 작용과 생화학 반응의 시각적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3. 고초균과 효모가 만들어내는 색 변화
된장의 색을 변화시키는 주요 미생물 중 하나는 바로 **고초균(Bacillus subtilis)**이다. 이 균은 단백질 분해 효소뿐만 아니라, 페놀화합물이나 페닐알라닌 분해산물을 통해 아민류와 반응할 수 있는 기질을 제공한다. 그 결과, 마이야르 반응의 전구물질이 더욱 풍부해져 된장의 색이 빠르게 변화하는 데 영향을 준다.
한편, 된장 속 효모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효모는 당분을 분해하여 에탄올 및 유기산을 생성하고, 산화환원 상태를 변화시켜 색소 성분의 안정성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효모의 일부 종은 갈변 반응을 가속화시키는 효소를 분비하기도 한다. 이처럼 고초균과 효모는 단순히 맛과 향에 영향을 주는 것뿐만 아니라, 색깔이라는 시각적 요소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주체로 작용한다.
4. 산화 반응과 외부 조건의 복합적 작용
된장의 색 변화는 미생물 작용뿐만 아니라 외부 환경 요인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특히 산소 노출 정도, 햇빛, 온도, 습도는 갈변 반응을 촉진하는 조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장독대에서 된장을 숙성할 경우, 뚜껑의 여닫음, 일조량의 변화, 계절적 온도 차이 등은 숙성의 속도뿐 아니라 색 변화의 정도도 달라지게 만든다.
산화 반응은 특히 표면에 가까운 부분에서 활발히 일어나며, 그 결과 겉과 속의 색이 다르게 나타나는 경우도 흔하다. 또한 소금 농도가 높을수록 산화 반응이 억제되어 색 변화가 느려지며, 반대로 저염 된장은 산화가 빠르게 일어나 색이 더 짙어지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이처럼 외부 조건과 미생물 효소 작용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복합적으로 된장의 색을 변화시키는 요인이 된다.
5. 된장의 색과 발효 단계의 상관관계
된장은 일반적으로 세 단계의 발효 단계를 거친다. 첫 번째는 초기 효소적 분해 단계, 두 번째는 중기 미생물 증식 단계, 세 번째는 후기 산화 및 성분 안정화 단계다. 이 각각의 단계에서 색의 변화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초기에는 색이 밝고 연하며, 중기에는 갈색 계열로 점차 어두워지고, 후기에는 흑갈색에 가까운 색으로 고착된다.
이러한 변화는 각 단계마다 다른 효소 반응과 미생물 활동이 지배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초기에는 단백질 분해에 집중되며 색 변화가 크지 않지만, 중기부터는 유리 아미노산과 당류가 풍부해지며 마이야르 반응이 급속히 일어난다. 또한 후기에는 색소가 안정화되며 더 이상 큰 색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색은 발효 상태를 가늠할 수 있는 하나의 지표로 기능할 수 있으며, 숙성의 ‘정점’을 가늠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6. 색 변화와 맛의 상관관계: 단순한 연관인가, 과학적 근거인가?
된장의 색과 맛은 상당한 상관관계를 가진다. 보통 색이 진한 된장은 감칠맛과 짠맛이 더 강하고, 색이 연한 된장은 단맛과 신맛이 상대적으로 두드러진다. 이는 단지 사람들의 경험적 인식이 아니라, 실제 화학적 성분 분석에서도 확인된다. 멜라노이딘, 유리아미노산, 펩타이드 농도가 높아질수록 색이 진해지고, 이들이 감칠맛과 쓴맛, 복합적인 풍미를 구성한다.
한 연구에서는 된장의 색 농도와 감칠맛을 결정짓는 글루탐산 함량 간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 상당한 정적 상관관계가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색깔이 단지 시각적 변화가 아닌, 미생물 활동과 효소 반응의 누적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의미하며, 된장의 풍미 변화와 색의 변화가 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과학적 근거를 제공한다.
7. 색으로 발효 상태를 진단하는 미래 기술
최근에는 된장의 색을 분석하여 발효 상태를 예측하는 기술도 개발되고 있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 앱으로 색 변화를 분석해 발효 정도를 예측하거나, 센서를 장착한 저장 용기에서 실시간으로 색상 변화를 감지하는 방식이 실험되고 있다. 이러한 기술은 비파괴적 방법으로 발효 상태를 진단할 수 있기 때문에, 산업적 가치가 매우 높다.
또한 색소와 관련된 마이야르 반응의 반응 속도를 예측하는 알고리즘 모델이 개발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숙성 시간 단축, 품질 예측, 이상 발효 감지 등 다양한 응용이 가능해지고 있다. 전통적인 장류의 숙성과정을 현대 과학과 접목시켜, 색이라는 시각적 요소를 정량화된 데이터로 전환하는 이러한 시도는 전통발효식품의 산업화와 품질관리의 새 지평을 여는 데 기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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