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러스균, 된장의 주역이자 단백질 분해의 설계자
된장은 콩을 주원료로 하여 발효시키는 전통 식품으로, 그 깊은 감칠맛과 영양성분의 핵심은 단백질의 분해에 있다. 이 복잡한 분해 과정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미생물이 바로 바실러스 서브틸리스(Bacillus subtilis), 흔히 고초균이라 불리는 세균이다. 고초균은 일반적으로 자연계의 흙이나 식물에서도 발견되며, 된장, 청국장, 간장 같은 콩 발효식품에서 핵심적인 미생물로 자리 잡고 있다.
고초균은 **단백질 분해 효소(protease)**를 다량 생산하는 능력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효소들은 콩 속의 복합 단백질을 잘게 분해하여 펩타이드와 단일 아미노산으로 전환시키는 기능을 수행한다. 단백질 분해는 맛뿐만 아니라 영양적 측면에서도 중요한 과정이다. 우리 몸은 단백질을 직접 흡수할 수 없기 때문에, 아미노산 형태로 미리 분해되어 있는 된장은 소화 흡수가 더 쉬운 건강식품이 된다.
고초균의 단백질 분해 효소는 어떻게 작용하는가
바실러스 서브틸리스는 다양한 종류의 **외부 효소(extracellular enzymes)**를 분비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특히 단백질 분해에 관여하는 주요 효소에는 **알칼리성 프로테아제(alkaline protease)**와 뉴트럴 프로테아제(neutral protease) 등이 있다. 이들 효소는 콩의 주된 저장 단백질인 **글리시닌(glycinin)**과 **콘글리시닌(conglycinin) **을 절단하여 더 작은 펩타이드 조각으로 만든다.
이 과정은 다음과 같이 이루어진다. 먼저 고초균이 콩의 표면 또는 장 내 환경에서 성장하면서 단백질 분해 효소를 분비한다. 효소는 단백질의 펩타이드 결합을 인식하고 특정 아미노산 서열 근처를 자른다. 그 결과 단백질은 디펩타이드, 트리펩타이드 등의 짧은 사슬로 쪼개진다. 이후 다른 효소들이 이 펩타이드를 아미노산 단위로 더 잘게 분해하면서 된장의 맛을 구성하는 글루탐산, 알라닌, 발린, 류신 등 다양한 유리아미노산이 생성된다.
아미노산 생성이 맛을 바꾸는 과학적 원리
된장에서 생성되는 유리아미노산은 단지 영양적인 역할뿐만 아니라, 맛의 복합성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다. 특히 **글루탐산(glutamic acid)**은 대표적인 감칠맛(우마미)을 유발하는 아미노산으로, 고초균의 단백질 분해 효소에 의해 풍부하게 생성된다. 이 외에도 트레오닌, 메티오닌, 트립토판과 같은 아미노산은 미묘한 단맛이나 쓴맛, 고소한 풍미를 더한다.
흥미로운 점은 아미노산이 단독으로 존재할 때보다 서로 복합적으로 작용할 때 훨씬 풍부한 맛을 낸다는 것이다. 고초균이 분해한 결과로 나온 펩타이드 역시 맛에 기여한다. 예를 들어, 글루탐산과 프롤린이 결합한 짧은 펩타이드는 더욱 강한 감칠맛을 형성할 수 있다. 이는 고초균의 단백질 분해 작용이 단순한 영양분 제공이 아니라, 전통 된장의 독특한 풍미를 구성하는 정교한 생화학적 작업임을 보여준다.
고초균의 생존 전략: 단백질을 에너지로 전환하다
바실러스 서브틸리스는 단백질을 단지 숙성 환경을 위한 도구로만 분해하지 않는다. 이 균주는 실제로 분해한 단백질을 자신의 생장에 필요한 에너지와 질소원으로 활용한다. 즉, 콩 단백질을 아미노산으로 전환시킨 후, 그 일부를 흡수해 자신의 대사에 이용하는 것이다. 이는 된장의 숙성과정 동안 미생물 개체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이후 점차 줄어드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초기 발효 단계에서 고초균은 활발히 성장하며 다량의 단백질 분해 효소를 분비한다. 이 과정에서 주변의 아미노산 농도가 높아지면, 고초균은 **포자 형성(sporulation)**을 통해 휴면 상태에 들어가기 시작한다. 포자는 매우 열과 염분에 강한 형태로, 고초균이 장기 숙성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게 해 준다. 즉, 단백질을 분해하여 자신의 생존 기반을 만들고, 일정 수준 이상 분해가 완료되면 환경 변화에 대비해 스스로를 보호하는 전략을 택하는 것이다.
고초균 외의 미생물과의 협업 작용
된장 속에는 고초균 외에도 다양한 미생물이 공존한다. 대표적으로 효모(Yeast), 유산균(Lactobacillus), 흑곰팡이류(Aspergillus oryzae) 등이 함께 서식하면서 된장의 발효에 복합적인 영향을 준다. 고초균이 주도적으로 단백질을 아미노산으로 분해하는 동안, 효모는 당분을 분해하여 에탄올과 향기 성분을 생성하고, 유산균은 환경을 산성화 하여 특정 미생물의 증식을 억제한다.
이러한 미생물 간의 상호작용은 시너지 효과를 유발하며, 각자의 기능이 겹치지 않도록 절묘하게 분담되어 있다. 고초균은 단백질을 주로 분해하고, 효모는 향미와 알코올, 유산균은 보존성과 안전성을 담당한다. 흑곰팡이는 초기 발효 과정에서 고초균의 단백질 분해를 도와주는 단백질 분해 효소의 공급원으로 작용한다. 이렇게 미생물 군집은 마치 유기적인 생태계처럼 작동하며, 그 중심에는 바실러스균의 단백질 가수분해 역할이 놓여 있다.
단백질 분해와 발효공정의 현대적 응용
바실러스 서브틸리스의 단백질 분해 메커니즘은 전통 된장의 발효 과정을 넘어, 현대 식품공학 분야에서도 활발히 응용되고 있다. 이 균주는 안전성과 산업적 생산성이 뛰어나 단백질 가수분해 효소의 산업 생산 균주로 널리 이용된다. 실제로 고초균에서 유래된 알칼리성 프로테아제는 세제, 제약, 식품 제조, 사료 산업 등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최근에는 된장 제조과정에서 고초균의 효소 활성도를 높이기 위한 효소 강화균주 개량, 균주 혼합 발효 시스템, 저염 발효에서의 효소 안정성 확보와 같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또한, 아미노산 함량을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피크 타이밍을 예측하는 발효 모니터링 기술도 등장하면서, 된장의 고유한 맛과 향을 유지하면서도 일관된 품질을 확보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개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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